개발자는 죽어서 코드를 남긴다
자아의 여행 본문
모든 것이 작게 보이는 거대한 태양 아래에
비쩍 마른 자아가 하나 쓰러져 있다.
자아는 너무나도 비쩍 말라서
일그러진 그 어떤 것이라도 될 수 있을 법했다.
자아는 어느새 몸을 일으켜
본능에 이끌리는 것처럼 어디론가 향한다.
아지랑이 피는 땅에 다리를 질질 끌며
앞만 보며 묵묵히 발을 놀린다.
마침내 자아는 수도꼭지 앞에 도달한다.
자아가 힘없이 수도꼭지를 돌려 재끼자
구부러진 수도꼭지에서 생명이 콸콸 쏟아진다.
쏟아지는 생명에 손등을 댄 자아는
그제야 정신을 차린다.
자아는 더 이상 생각할 겨를도 없이
수도꼭지 밑에 누워 온몸으로 생명을 받는다.
생명을 받은 자아는 더 이상 말라 있지 않다.
자아는 힘차게 일어나 수도꼭지를 잠그고는
만족했다는 듯이 어딘가로 씩씩한 발걸음을 딛는다.
태양과, 자아와, 수도꼭지. 이것이 인생이다.
물론 누군가의 태양은 바로 머리 위에서 작열하고
어떤 자아는 몸을 일으키기도 힘들지 모른다.
그래도, 마음속의 수도꼭지만은 잊으면 안 된다.
태엽처럼 돌리면 생명이 나오는 수도꼭지가 있다는 것을,
절대로 잊어선 안 된다.
2015 06 11